술 취한 신해철?
“그 날 새벽까지 술 마시고 집에 돌아갔다. 로켓 발언은 술자리 마지막 건배사였다. 건배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거다.”
(오마이뉴스 4월 17일 신해철 인터뷰)

▲ 출처 : 오마이뉴스
‘막걸리 보안법’이라는 말이 있다. 막걸리 반공법에서 비롯된 말이다. 1961년 제정된 반공법에 ‘찬양.고무’ 조항이 있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됐다. 그만큼 자의적이었다는 말이다.
“일반시민들이 술김에 격분으로 또는 농담 삼아 토로한 언동조차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으로 단죄되었는데, 바로 이처럼 과도하게 남용되는 것을 빚댄 표현이 ‘막걸리 반공법’ 또는 ‘막걸리 국가보안법’이라는 별칭이었다.”(2003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실태)
일반시민들의 사소한 불만마저 정권비판이 되고, 북한도 남한 정권을 비판하는 만큼 이 비판은 그대로 북한과 똑같은 논리구조를 갖게 되기 때문에 친북반미가 되고, 이는 곧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이 예정하는 바에 ‘딱’ 걸리고 마는 것이다.
박원순 변호사는 이를 두고 “가장 초보적이고 원천적인 언론자유의 유린”이라고 표현했다(박원순, 국가보안법연구2).
‘막걸리 반공법’, ’막걸리 보안법’의 사례들
(다음 사례는 앞서 인용한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를 재가공한 것이다.)
▲ 피고인 이○○는 술자리에서 “이북에는 김일성이가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은 거짓투성이다 박○○는 쏴 죽여야 한다. 이북으로 가자”고 고함을 치는 등으로 북괴에 동조했다(69고46201 반공법 위반, 2심에서 징역8월 집행유예 2년 선고).
▲ 피고인은 1986년 5월 새벽 2시경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술기운이 올라 같은 장소에 있는 남자와 시비를 벌이다 갑자기 큰 소리로 ‘김대중 만세’를 외친 뒤, 노상에 드러누워 두 팔을 어깨 위로 번쩍 올리면서 ‘김정일 만세’를 3차례, ‘김일성 만세'를 2차례 반복해 고창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 괴리집답의 수괴 김일성과 그 후계자 김정일을 찬양.고무하여 그들을 이롭게 하였다(86년 6월 불구속 입건된 도아무개(당시 32살)씨 송치기록).
▲ 1986년 11월 낮 12시께 서울 성북구의 한 사찰에서 열린 친형의 칠순 잔치에 참석해 소주 1병을 마시고 놀다가 오후 5시께 귀가하기 위해 버스에 승차했는데 요금을 내지 않자, 운전기사가 ‘요금을 내라’고 하니, ‘운전이나 잘하라’고 소리치며 술주정을 하다가, 승객 30여명을 향해 ‘나는 공산당이다. 왜 공산당이 나쁘냐. 공산당을 잡는 놈이 더 나쁜 놈들이다. 왜 데모하는 학생들을 잡아넣느냐, 잡아넣는 놈이 더 나쁘다. 김일성은 위대한 인물이다. 잡아넣어라 이 새끼들아.'라고 10여분간 외쳐 반국가단체인 북괴 공산당과 그 수괴인 김일성을 찬양.고무.동조해 그들을 이롭게 한 것이다(86년 11월 구속돼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은 김아무개(딩시 55살)씨 송치기록).
▲ 1986년 1월 오전 10시께 서울 중구 만리동에 있는 한 여인숙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강아무개(당시 45살)씨는 부근 구멍가게에서 빈 속에 깡소주를 들이 부었다. … 취기는 어느새 머리끝까지 올라 있었다. 몇시간 뒤 중구 정동의 한 다방에 나타난 강씨는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만나게 해달라. 김일성은 정치 1인자다. 참 좋은 사람이다. 나는 갈매기다. 나는 빨갱이다. 이북으로 넘어가야 한다. 약속한 시간에 넘어가야 한다. 전두환이나 노태우도 별것 아니다”며 20여분간 소란을 벌인 끝에 경찰에 연행된 그는 며칠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니, 신해철씨에게 미안한 기분이 든다. 사실 본래적 의미의 ‘막걸리 반공법’, ‘막걸리 보안법’은 꼭 술 취해 한 발언에 대해 보안법을 적용한 사례로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막걸리 보안법’은 술취한 발언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북한을 찬양하고 동조하겠다는 고의나 인식이 없는 사례에 대해 막무가내로 법을 적용하는 사건을 말한다. 북한을 찬양하겠다는 이론적 근거를 갖춘 정교한 발언이 아니라, 취중이나 격분한 상태에서 자제력을 잃고 홧김에 한 발언에 대해서까지 보안법이라는 엄청난 법을 적용한 사건을 말한다. 비판의 내용이 단순하고 우발적이며 구체적 결과를 예정한 것도 아니고, 구체적 위험을 발생시키려는 인식조차 없는 사건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버린 사건을 말한다.
북한을 찬양하기보다 우리 사회를 비판하고 우리사회의 허위의식과 이중적 행태와 아무런 의미 없는 극단적 엄숙주의를 비판한 사건마저도 우리사회에 대한 비판이 곧 친북이라는 식으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버린 그런 사건을 말한다.
그간의 사례를 보면 꼭 술 취한 상태에서의 발언이 아니라, 별다른 생각 없이 특별한 의도 없이 지극히 순간적으로 나라를 비판하고, 정치를 비판하고,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마저도 국가가 요구하는 하나의 생각에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아무런 처벌할 가치조차 없는 다원주의적인 사유체계에 입각한 사소한 발언마저도 결코 용납하지 못하고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들이댄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 사건은 너무도 많다.
무죄를 선고받은 ‘막걸리 보안법’ 사례들
이를테면 내 집을 철거하는 철거반원을 향해 “김일성이 보다도 
더 한 놈들”
이라고 비판한 사람이 반공법으로 구속됐다. 다행히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이 사람의 명예와 구속에 따른 피해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예비군 훈련 통지서를 받고 “예비군 훈련이 지긋지긋하다. 안 받았으면 좋겠다. 내일 판문각 관광을 가는데 그곳에서 수 틀리면 북한으로 넘어가버리겠다”고 발언한 사람이 있다. 당연히 반공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다행히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영어를 전혀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이 붉은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는 도안과 영문으로 “North Korea, Land of the Free(북한, 자유의 땅)"이라고 쓰인 잠바를 미국 군인의 주문에 의해 제조해서 진열한 사람이 있었다. 한글이라곤 전혀 없었고, 주한미군의 주문이었다. 대법원에 가서야 간신히 무죄를 받았다.
이런 식의 사건이 바로 ‘막걸리 국가보안법’인 것이다. 고소당한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물론 신해철은 “석달 정도 살다 나오죠”라고 웃어넘겼다고 한다. 하지만 고소당해 가서 조사 받는 것만으로도 고통이다. 물론 조사받는 게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이겠지만, 그 고통에 대해서도 한 번쯤 헤아려야 한다.
신해철 발언이 무죄일 수밖에 없는 이유
이미 블로그의 다른 글을 통해 신해철이 무죄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간단히 적은 바 있다.(신해철, 풍자냐 찬양이냐 참조)
신씨: “그렇지만 그 문장을 통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주권을 갖고 있는 나라가 핵을 개발하든 로켓을 쏘든 우리 맘인데, 외세에 의해서 제한 당하고 있는 걸 당연시 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마음의 자세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 주제에, 북쪽 로켓 발사를 비난한다? 우리는 노예근성이 아주 이제 (뼈에) 박힌 게 아닌가. 우리가 만들고 싶으면 다 만들겠다, 하지만 세계평화를 위해서 자제하겠다고 하면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지 않느냐."
신해철의 발언 자체에서 이미 죄가 될 수 없다는 증거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신씨는 우리사회의 엄숙성, 경직성, 허위성, 이중성을 조롱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 우리사회에 대한 조롱이요, 풍자다. 그런데 누군가는 못 참고 국가보안법의 잣대를 들이댔다. 이 정도의 자유조차 용납하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 사회를 자유민주주의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국가보안법을 91년에 조금이라도 개정해 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 전까지는 아무런 ‘목적’이 없더라도 그저 찬양이고, 고무고, 동조면 무조건 걸려들었다. 중국과 수교하게 되면서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때가 91년이다. 이때 법 적용을 제한하는 ‘목적’을 집어넣었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구성요건을 집어넣어 법 적용을 제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목적범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확한 인식과 목적이라는 고의 이상의 요건을 추가해 놓은 것이다. 물론 이 개념 자체도 대단히 추상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다. 그 점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상정되었을 때 가장 큰 쟁점이 됐던 부분이 바로 제7조 이 부분 이었다. 제7조는 의미 없다는 것이 필자 등의 입장이었고, 제7조를 없애면 큰일 난다는 것이 반대쪽의 입장이었다. 그해 12월 4일 한나라당식 표현을 빌자면 이른바 필자의 ‘손바닥 상정’까지 있었음에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지 못했다. 그 폐해와 후유증이 엉뚱하게도 신해철씨의 몫이 되었다.
(그 때의 죄의식이 자꾸만 이 글을 쓰게 하는지 이유일까.)
사회주의자인 로자 룩셈부르크는 「러시아 혁명」이라는 원고에서 레닌이 이끄는 러시아 볼셰비키를 향해 이렇게 일갈한 적이 있다. 사회주의자들조차도 이랬다는 증거다.
“정부의 지지자들만을 위한 자유, 당원들만을 위한 자유는 그것을 누리는 자의 수가 얼마나 됐건 자유가 아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다. 정의에 대한 광신적 열정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자유의 소생과 치유와 정화가 바로 이 정치적 자유에 달려 있고, 자유가 특권화 되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http://blog.ohmynews.com/cjc4u/272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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